공동체

공동체는 라오스와 한국의 어르신들께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라오스 어르신들께서는 인도차이나 이주 및 난민 지원 법에 따른 후원 및 이주 혜택을 받기 위해, 이미 정착한 국가의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가 중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한국인 어르신들께서는 1965년 이민 및 국적법의 핵심 요소인 가족 후원에 의존하여 미국에 이주하셨습니다. 이러한 지역 공동체의 유대관계는 주거 및 취업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며, 필수적인 물류 지원까지도 제공해 왔습니다.

우리의 어르신들께서는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동시에, 문화적 뿌리와의 깊은 연관성과 전통을 보존하고 싶은 열망을 강조하셨습니다. 지역 공동체는 이러한 균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입소문을 통해 라오스 및 한국 공동체의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이는 심지어 고국의 지인들과 다시 연결하고 소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불교 사원(라오스 어르신들께서 참여하신)과 기독교 교회(한국인 어르신들께서 참여하신), 그리고 다른 지역 공동체 단체들을 통해 상당한 지원을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자원들이 더 광범위한 미국 사회와의 교류 기회들을 제공했습니다.

강력한 지원 네트워크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께서는 미국에서 수십 년을 보낸 후에도 지속적인 아웃사이더 위치 또는 고립감을 느끼셨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주로 백인이나 다른 비아시아계 환경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경험을 통해 더욱 더 심화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라오스 어르신들께서는 종종 공산당 장악에 만연한 불신과 두려움 같은 과거의 경험에 대한 부담감을 짊어지고 계셨습니다. 이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도 다른 이들에 대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게 되셨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 한국의 어르신들께서는 공동체(예배 장소를 포함하여)와 다양한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들을 지나친 전통주의자, 폐쇄적인 고립주의자, 그리고/또는 부패한 이들로 인식하셨습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께서는 보편적으로 라오스와 한국인의 공동체가 인정받고 발전해 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